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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우는 아이
  | Name : 이보연  | Date : am.12.5-10:30
웅진씽크빅 - 엄마는 생각쟁이 2009년 12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 우는 아이

                               이 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공부도 곧잘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욕심을 부리거나 싸우지도 않으며, 엄마의 일도 잘 도와주는 아영이는 딱 한가지만 빼면 정말 나무랄데 없는 아이입니다. 아영이의 유일한 단점은 눈물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울때는 울어야 하지만 아영이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쉽게 눈물을 보입니다. 얼마 전 친구네 집 생일파티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신나게 놀다보니 아이들이 더웠나봅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집 앞 가게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나갔습니다. 마침 그 가게에는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이 있었고 아이들 모두 그 아이스크림을 골랐습니다. 아영이도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찾았지만 아영이 것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것을 집어 들었지만 눈물만 흘리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였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갖고 온 시험지를 채점해 돌려보내야 했는데, 아영이는 채점을 해보나마나 다 맞았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습니다. 하지만 채점을 하다보니 두 개가 틀렸는데, 엄마가 틀렸다는 표시로 작대기를 긋자마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마음도 달래주어 보았으나,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 눈물을 흘려대니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도 짜증이 나기 시작하여 결국은 “당장 뚝 그치지 못해!? 별 것 아닌 것 갖고 툭하면 울고 난리야!”라며 야단을 쳐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보니 아영이의 눈시울이 빨개지기만 해도 자꾸 야단을 치게 되고, 아이를 너무 유약하게 키운 것은 아닌가 해서 엄마 마음도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아영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되지 않았을 때, 좌절을 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아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가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들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마음이 너무 유약하여 자기주장을 잘 하지 못하고 눈물로 해결하려 한다는 지적도 받습니다. 미취학전에는 쉽게 우는 특성을 ‘어린 아이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 비교적 보호도 받고 달램도 받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이런 행동을 지속하게 되면 ‘아기같다’, ‘답답하다’며 야단, 특히 짜증섞인 비난을 많이 받게 됩니다. 물론 툭하면 우는 행동은 미숙하고 아기같은 행동이므로,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이러한 행동을 빈번히 한다면 그것은 감정조절에서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타고날 때부터 심장이 강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약한 것처럼 아이들의 감정조절 능력도 아이들마다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아영이와 같이 쉽게 눈물이 나는 아이들은 강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입니다. 그들의 감정적 센서는 매우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고 조그만 갈등과 좌절, 고통과 기쁨들도 놓치지 않고 잡아냅니다. 우리는 아이의 툭하면 우는 특성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잘 우는 아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런 아이들은 우는 것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웃기도 잘 하고, 감동도 잘 느낍니다. 텔레비전에서 무섭고 잔인한 장면이 조금만 나와도 ‘아이, 무서워!’하며 숨어버리고, 팽팽한 긴장감이 고조되는 영화는 안절부절하며 보지를 못합니다. 직관적으로 감정을 파악하는 면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감정 센서가 발달하다보니 머리로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잘 알지만 이미 감정이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참으려 해도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영이도 친구들과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마음 속으로는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참아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울음을 참고 싶지만 그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던 마음이 좌절되었을 때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져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다른 아이의 아이스크림을 뺏어먹지도 않으며,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습니다. 그런 일이 옳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에게 자꾸 상황을 설명하고 왜 우느냐며 다그치는 일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우는 것이 아니며, 다만 자신의 마음의 고통 때문에 아파서 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부모가 옆에서 상황을 자꾸 납득시키려고 들게 되면 아이는 마음이 더 아프게 됩니다. 자신이 부모나 주변 사람에게 이기적이고 나쁜 아이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해지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의 우는 모습은 그다지 예쁜 것은 아니나, 아이가 혼자 눈물을 흘릴 때는 그저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만 하세요. 예를 들자면 아영이가 원하던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해 슬퍼할 때, “할 수 없지 뭐. 어떡해. 다 팔린 걸.. 다음에 먹자”라고 하는 대신에 “너도 다른 아이들이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먹고 싶었는데, 그 아이스크림이 다 팔려서 먹지 못하게 되었구나. 정말 속상하겠다.”라고 말해주고 그저 아이의 어깨를 몇 번 다독여만 주세요. 아이는 엄마의 위로를 받고 더 흐느껴 울 수 있으나 그러한 흐느낌은 더 깊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일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부모님들이 이 단계까지는 잘 하십니다. 문제는 아이를 달래주었는데도 아이가 계속 울고 있을 때 일어납니다. 이제 그만 좀 울음을 그쳤으면 좋겠는데도 아이가 계속 하면 부모님은 좀 전에 주었던 메시지와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제 좀 그만 해라. 그 정도면 됐다. 지겹다” 등등.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는 아이의 슬픔과 두려움을 자극시켜 더 깊고 지속되는 울음을 낳을 수 있으므로 피하셔야 합니다. 공공장소가 아니고 주변에 눈치를 볼 만한 사람들이 없을 땐 아이가 울도록 그냥 두시면 됩니다. 부모로서 뭐든 하고 싶다면 아이 옆에서 “많이 속상했구나. 그래, 지금은 눈치볼 사람도 없으니 울고 싶으면 울어라.”고 말해주시고 부모는 부모의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아이가 실컷 울고 기분이 나아졌으면 아이의 기분이 나아진 것에 대해 함께 기뻐해주고, 그 때의 기분을 아이가 이번엔 울음이 아닌 언어로 표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만일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눈물을 쏟을 경우, 가벼운 정도라면 위의 경우처럼 다독여준 후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고, 좀 더 심한 정도라면 사람들이 적은 곳에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수 있도록 배려해줍니다. “너도 그 상황을 이해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구나. 그래서 울음이 너도 모르게 계속 나는 것이고. 그런데 이젠 조금씩 참아보도록 애써보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울음이나 웃음도 가끔은 참아야 하거든. 대신 이따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안겨 울어도 되고 이야기를 실컷 하도록 하자.”라며 공공장소에서의 행동에 대한 지도도 해주도록 합니다. 이런 말을 해준다고 해서 아이의 울음이 금세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는 감정에 휩싸여 잠시 잊었던 공공장소의 예절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태어났을 때 아무런 힘도 없었던 다리가 어느새 마라톤을 뛸 수 있는 굳건한 다리로 성장하듯 연약하고 예민한 감정을 가졌던 아이들도 자라면서 보다 강해지게 됩니다. 감정이 강해진다는 것은 독해지고 모질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면서 이를 언어를 통해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좋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쉽게 눈물을 흘린다면 아이를 비난하고 공격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를 언어로 보다 잘 표현하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아이의 감정조절 능력을 발달시키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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