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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 Name : 이보연  | Date : am.2.12-10:36
천재교육 - 꾸러기 논술 2010년 3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이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늦은 아침을 먹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텔레비전 속에는 고 최진실의 두 자녀가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간 모습이 나오더군요. 촬영을 하던 VJ가 최진실의 아들에게 묻습니다. “이 다음에 어떻게 살고 싶니?”. 아마 그 VJ는 그 아이의 꿈이 궁금했었나 봅니다. 그 아이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합니다. “평범하게요.” 이번엔 딸에게 묻습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 오니까 좋지?”. 이름이 준희라는 최진실의 딸아이는 “가족이 다 온 거 아닌데.. 한 명이 빠졌는데... 엄마!”라고 말합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오빠의 말과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여동생의 말이 한동안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식들이 특별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평범한 삶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함’이란 단어가 주는 진부함 때문에 어른들은 평범한 사람이 되겠다는 아이들의 소망에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은 아이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욕심스럽고 허황된 것도 아닙니다. 부모들이 마음만 먹으면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삶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평범함이란 동화책에 나오는 행복한 가정입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근면하고 자상한 아빠와 잔소리는 많지만 정도 많아서 야단을 치고도 마음 아파하는 엄마가 있고, 학교갔다 돌아오면 꼬리치며 반가워해줄 수 있는 강아지라도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아웅다웅 싸우지만 우애좋은 형제자매가 있고, 가끔씩 시골에서 올라와 용돈도 쥐어주고, 엄마한테 야단맞을 때 편도 들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좋습니다. 가끔 가족간의 갈등도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리치고 때리며 싸우지 않고, 이혼이나 별거와 같은 험악한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부부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고민합니다. 때로는 사정이 나빠질 수도 있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 노력하여 위기를 극복해 냅니다. 해외여행을 못가지만 아빠는 휴일에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지친 몸을 내주고 익살을 떠는 어릿광대짓도 마다하지 않으며, 엄마는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만들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책을 읽어주고 자장가를 불려주며 귀신이 무섭다는 아이에게 ‘그깟 귀신 엄마가 다 잡아 혼내줄꺼다’며 아이를 안심시킵니다.

이러한 것들이 아이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입니다. 어른들처럼 평범하다는 것에 ‘샐러리맨’,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애정이 넘치고 안정적인 가족과의 삶을 평범한 삶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평범한 삶은 아이들에겐 안정적인 울타리와도 같아서 이러한 곳에선 늘어지게 낮잠을 잘 수도 있고, 신나게 놀 수도 있으며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선 아이들은 자기의 꿈을 펼칠 수 있습니다. 소방관도 되고 싶고, 아나운서도 되고 싶고, 동물보호운동가가 되고도 싶습니다. 평범한 삶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아이들은 특별한 삶을 꿈꾸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빈이는 잘생기고 똑똑한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입니다. 유빈이의 꿈도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회사원인 아빠와 전업주부인 엄마를 둔 유빈이의 가정은 그야말로 평범하지만 유빈이가 느끼기에 아빠는 아빠답지 못하고, 엄마는 엄마답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빠는 술을 먹고 들어온 날이면 한바탕 소란을 부려대고 그런 다음날이면 삐지고 화난 엄마 때문에 유빈이는 아침도 못먹고 학교를 가야합니다. 툭하면 엄마는 유빈이를 붙잡고 울며 하소연하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보고 성질을 부려대다 며칠씩 안들어오기도 합니다. 유빈이는 이런 엄마, 아빠가 이상하며 부모답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 다음에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혼이나 별거, 혹은 죽음 등으로 가족이 해체되었을 때 평범한 삶이 위협받을 수 있으나 , 이러한 가족 구조보다 평범한 삶을 더 위협하는 것은 삶의 ‘질적인 요소’입니다. 가족이 모두 함께 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고, 가족간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원활하게, 긍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느냐가 행복과 직결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너무나 당연히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며, 가정은 행복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이 평범한 가정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평범한 것일 뿐입니다.

이제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의 입학과 새학기를 앞두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계실 겁니다. ‘이번엔 돈이 좀 들더라도 유명한 학원을 보내야지’, ‘과외를 시켜볼까?’, ‘올해에는 꼭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야겠어...’ 아이들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으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셔야합니다. 이런 야심찬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하느라 혹시 평범한 삶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를 사랑하고 돌보는 부모의 역할보다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에 더 충실한 것은 아닌지... 평범한 삶이 아이의 특별함으로 가는 전초기지가 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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