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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촉하지 않는 부모
  | Name : 이보연  | Date : pm.10.27-04:49
천재교육 - 꾸러기 논술 2009년 11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재촉하지 않는 부모

                                          이 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조바심을 친 첫 번째 일은 ‘청력 테스트’ 사건입니다. 우리 딸이 생후 2개월 즈음 되었을 때 소아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소아과에서는 서비스 차원으로 신생아에게 발달평가를 해주었는데, 아이의 귀에 종을 흔들어 청각반응을 살펴보는 검사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간호사가 종을 흔들면 아이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하는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딸아이가 종소리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리 저리 종을 울리던 간호사는 “가끔 이런 경우도 있어요. 별 일 아닐 꺼예요”라고 말하긴 했지만 제 마음은 왠지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를 눕히고 아이 귀에다 손뼉을 쳐대고 급기야 딸랑이를 귀 가까이에서 흔들어 대기도 했지요. 어떤 때는 맞게 고개를 돌리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가만히 있는 아이의 비일관적인 반응에 제 마음은 더욱 타들어갔고, 그래서 30분이 넘게 아이 귀에 딸랑이를 흔들어대었습니다. 이 일은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딸아이 이름을 부르자 아이가 그쪽으로 얼른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청력 이상 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 때 아이 귀에 대고 흔들었던 딸랑이를 제 귀에 대고 흔들어 보니 그 소리가 엄청 시끄러워 한동안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걸음마를 돕는 장난감’을 산 것도 조급증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입니다. 딸아이가 물건 잡고 일어서서 띄엄 띄엄 걷기 시작할 무렵 빨리 걷게 하고픈 욕심에 가격이 꽤 나가는 걸음마를 돕는 장난감을 샀습니다. 바퀴가 달려 있어서 아이가 서서 발걸음을 떼면 앞으로 밀려나가 걸음마를 촉진한다는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뭣하러 그걸 샀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아무튼 첫아이에 대한 과도한 관심 덕분에 그 장난감을 샀고, 아이는 그 장난감을 산 후 며칠도 안되어 스스로 걸음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장난감이 도움이 되었다면 돈이 아깝지는 않았겠지만 아이는 걸음마를 연습할 때는 엄마가 내미는 그 장난감은 밀어내고 탁자며 장식장을 버팀목삼아 붙잡고 발걸음을 옮기고 하였습니다. 그 비싼 장난감은 버튼을 눌러 노래를 들을때나 쓰여졌지요. 이 두가지 일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울 때 더 이상 조급증을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우리 부부는 조급증을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를 키울 때 보다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위 아동상담가라는 사람도 이러한 조급증을 버리지 못하는 데, 아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더 더욱 조급증을 부리게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어머님들이 별일이 아닌 문제를 갖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아이를 닥달합니다. 이제 두 돌도 안된 아이가 문화센터에서 엄마와 안떨어지려 한다고 상담실을 찾는 어머님도 있고, 세 돌 된 형이 연년생 동생에게 양보를 안한다며 걱정하는 어머님도 계십니다. 이제 5살이나 되었는데 아직 한글을 모른다며 지능검사를 받겠다는 부모님도 있습니다. 좀 더 자라면 피아노 진도가 더디게 나간다고 초조해하고, 6개월 선행학습도 모자라 1년 선행하는 학원으로 옮겨야겠다는 결심도 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아이를 위해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혹시 아이의 발달과정이나 수준을 무시하고 너무 재촉만 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가끔은 스스로 체크하는 것도 빼놓으면 안됩니다. 특히, 요즈음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학습에 관한 한 세계최고 수준의 조급증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이가 정말로 학습을 잘하게끔 하려면 아동의 인지발달에 관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의 인지발달에는 단계가 있으며, 그 단계의 인지수준을 뛰어넘는 학습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추론하며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정신능력이 갖추어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의 발달수준에 적합한 ‘시험’과 ‘커리큘럼’으로 짜여져 있는 교육을 받을 때 가장 좋은 학습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촉하는 부모에게 아이의 발달수준에 적합한 교육은 종종 ‘뒤처진’, ‘나태한’ 교육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성급하고 재촉하는 부모에겐 아이의 수준에 맞는 것이 아니라 앞선 것을 가르쳐주는 교육이 좋아보일 것입니다. 분명 교육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지만 아이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것을 가르쳐 아이를 멍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바보’로 느끼게 하거나 질리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아동심리학자는 요즘의 사회를 압력솥 사회로 비유하면서 부모들이 자녀를 키울 때 덜 익은 아이를 압력솥에 넣고 빨리 익히려는 조급증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조급한 부모는 항상 아이가 더 빨리, 더 유능하게 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아이의 발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아이도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해 자신감이 없어지고 점점 더 못난 아이가 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덜 익은 과일을 익게 하려고 카바이트로 억지로 익히고 왁스로 광택내면 얼핏 보면 근사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맛도 없고 금세 상해버리는 것처럼 아이도 억지로 익히려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뜨거운 태양과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영글어가는 과실처럼 아이도 부모의 사랑과 배려를 통해 서서히 익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오기까지 묵묵히 병충해에서 보호하고 돌봐주는 농부처럼 이제 부모도 기다림을 배워야 합니다. 잘 기다린 부모는 풍요한 수확이라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가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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