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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대장이고 누구는 부하?
  | Name : 이보연  | Date : pm.10.28-01:04
웅진씽크빅 - 엄마는 생각쟁이 2009년 11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는 대장이고 누구는 부하?

                             이 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유진이는 택현이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습니다. 택현이는 유진이의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초등학교 3,4학년 연이어 같은 반이 되면서 둘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그렇게 친한 친구가 생겼으니 좋겠다고 말을 하지만 유진이 어머님의 마음은 썩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택현이는 눈치도 빠르고 영리한 아이지만 어떤 때는 얄미울 정도로 ‘치고 빠지기’를 잘합니다. 어른들이 있을 때에는 유진이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듯 하지만 어른들이 안보이면 유진이를 머슴 부리듯 부려 먹을 때도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유진이가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이천원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렸습니다. 알고보니 택현이가 시원한 음료수가 먹고 싶다며 유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택현이의 집이 학교와 더 가까운 데도 유진이에게 엄마에게 가서 돈을 타오라고 시킨 것입니다. 은근히 유진이를 뒤에서 조종하고 이용해먹는 것 같아 택현이를 볼 때마다 왠지 마음이 무겁고, 그런 택현이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유진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윤주엄마는 유진이 엄마와는 다른 고민이 있습니다. 윤주엄마는 윤주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 듭니다. 윤주가 너무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기 때문이지요. 윤주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기 집이라고 위세를 떠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일일이 역할을 지정해주며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만일 어떤 아이가 말을 잘 따르지 않으면 대놓고 면박을 주고, 다른 아이들을 구슬려 그 아이를 배척시킵니다. 그 때문인지 아이들은 윤주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기분이 상할 텐데도 윤주의 말에 잘 따라줍니다. 학교에서는 ‘여대장’이라는 것이 윤주의 공식 명칭이고, 윤주 또한 자신을 대장으로 생각하는 데 이의가 없습니다. 가끔은 부모님을 졸라 친구들에게 과자와 연필을 돌리는 선심을 쓰기도 하지만, 그런 물질공세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는 것으로는 진정한 우정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엄마로써는 윤주가 안쓰럽고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멋지고, 잘생기며 돈 많고 게다가 자상하기까지 한 남자 혹은 아름답고 착하며 현명한 여자와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모든 남녀의 로망이라면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사려깊고 배려심 많으며 관용적이고 게다가 유머러스한 친구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동화속 왕자나 공주와 같은 사람들과 멋진 결혼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처럼 부모들이 바라는 그런 멋진 친구를 모든 자녀들이 가질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청소년기 이전의 아이들은 추상적인 개념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친구’의 개념들을 갖고 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도대체 우리 아이가 왜 친구같지 않은 아이를 친구라고 부르는 지 이해하기 어려우며 자녀가 멋진 친구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친구와 우정’에 대한 개념의 발달을 이해한다면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를 지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른들은 ‘친구’라는 말을 생각하면 ‘대등한 관계’,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관계’, 그리고 ‘어려움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를 떠올리게 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친구란 ‘함께 하는 일이 잦은 또래’, ‘나를 즐겁게 혹은 놀아주는 상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자신을 함부로 다루는데도 함께 하는 것을 보면 자존심도 없는 아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와 함께 하려는 것은 분명 그 친구를 통해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를 통해 무료함을 달랠 수 있고, 소외감을 덜 느낄 수 있으며 때론 짜릿함과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는 아무도 놀아주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며 칭찬보다는 비난을 더 많이 듣지만 친구는 가끔 나를 부려먹기는 해도 나와 함께 있으며 같이 시간을 보냅니다. 문방구에서 훔친 샤프를 친구에게 주면 친구는 나에게 멋지다고 하고 고맙다고도 합니다. 관심이 필요했던 아이에게는 좋고 나쁜 친구를 가릴 여유가 없으며 자신과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면 족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유진이는 택현이가 가끔 자신을 구박해도 함께 있어주고 놀아주고 때론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기 때문에 그 옆에 붙어있게 된 것입니다.

얼핏보면 친구를 함부로 대하고 대장처럼 구는 아이들은 부하노릇을 하는 아이와는 달라보이지만 사실 비슷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대장노릇을 하는 아이들도 친구들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강하고 유능하다고 느끼고 싶은 데 집에서는 이러한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므로 이를 또래관계에서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명령을 하고 함부로 대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대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따돌림을 받을 수 있음을 알기에 때로는 친구들에게 선심을 쓰며, 자신이 나서서 친구들을 보호해주기도 하고 때론 험한 일을 대신 하기도 합니다. 자기 편이 공격을 당하면 나서서 보복을 해주거나 깜짝 선물을 주기도 하는 것이지요. 어머님은 윤주가 친구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만 보셨겠지만 학교에선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에게 맞거나 놀림을 당하면 윤주가 나서서 때려주고 선생님께 이르는 것으로 나름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장노릇을 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용감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배려와 관용과 같은 진정한 리더십이 아니라 명령과 선물공세 혹은 도전적인 행동으로 대장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 깔린 것은 부하노릇을 하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또래에게 소속되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청소년기 이전의 자녀들은 친절, 평등, 배려심 만큼이나 함께 하는 것, 관심을 받는 것이 친구선택에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왜 그런 못된 아이와 사귀느냐’,‘왜 아이들을 함부로 다루느냐’며 겉으로 보이는 문제에만 초점을 두고 비난을 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아이가 가족 및 대인관계에서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충분히 받고 있는 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건강한 관심과 애정을 받은 아이는 자신이 부적절한 취급을 받아가면서까지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으며, 굳이 주변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장노릇을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반면 아이에게 별다른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으면서 친구와 만나지 못하게 하고 놀지 못하게 한다면 아이는 더욱 더 관심과 애정에 대한 허기를 느끼며 친구에 대한 집착만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무조건 불평등한 친구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아이에게 충분한 관심, 애정을 제공하여 자아상이 긍정적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을 가장 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아이에게 좋은 친구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친구를 위해 애쓰고 행동하는 것이 부하노릇같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 아들은 정말 좋은 친구구나. 친구를 위해 양보를 했구나. 좋은 친구사이란 이렇게 서로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주는 것이지.”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이때 “너는 왜 맨날 부하 노릇만 하니?”라고 말하게 되면 아이는 이후 자신이 부하노릇을 할 때마다 수치심을 느끼고 이를 만회하고자 대장노릇에 연연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좋은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알게 된다면 아이는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끼는 대신에 친구를 배려하지 않는 아이를 떠나 좀 더 배려심 깊은 아이를 친구로 선택하게 될 수 있는 ‘좋은 친구를 고르는 안목’을 발달시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대장노릇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을 갔을 때도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네 모습은 정말 예뻐. 친구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하고, 친구들이 무얼 좋아할 까 생각하면서 그 친구의 마음과 생각도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바로 그런 게 친구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라며 아이가 보이는 좀 더 이타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춰 주어 좋은 친구사이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유도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좀 더 빨리 좋은 친구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주고 싶다면 ‘우정’에 관한 책을 함께 읽는 것도 좋습니다. 책의 등장인물을 따라가며 그에 관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친구관계도 되돌아볼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내게 하고 싶다면 내 아이뿐 아니라 아이의 친구까지 보듬어 주는 관대함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아이들은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다정스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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