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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교훈
  | Name : 이보연  | Date : pm.8.22-05:42
천재교육 - 꾸러기 논술 2010년 9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월드컵의 교훈

                                             이 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한 달 동안 전 세계를 달구었던 월드컵이 끝나고, 이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에게는 이번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월드컵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어떤 한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번 월드컵에는 차두리 선수가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기도 했지요. 인터넷에서 ‘차선수의 로봇설’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서 정말 배가 아프도록 웃고, 그런 기발한 생각들을 해내는 사람들에게 감탄하기도 했었습니다. 로봇설 중에는 차두리 선수가 아무리 힘든 훈련 속에서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 바로 로봇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세상 사람들의 눈이 모두 비슷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 축구에 큰 관심이 없고 축구선수들도 잘 알지 못하는 저 역시 차두리 선수를 볼 때마다 항상 웃고 있는 모습에 ‘저 선수는 늘 뭐가 좋아서 저렇게 싱글 벙글일까? 참 성격도 좋나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차두리 선수의 항상 웃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딸이 있으면 사위삼고 싶게 만드는(지금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니 물 건너간 생각이지만) 인상 좋은 차두리 선수를 보며 부모님들의 양육방식이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차선수의 어머님이 쓰셨다는 글을 읽게 되었지요. 그리 길지 않은 글이었으나, 그 속에서 차두리 선수의 환한 미소가 어떻게 생길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차두리 선수의 어머님은 차선수가 경기를 끝내고 오면 “잘했냐?”고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오늘 경기 재미있었어?”라고 한다지요. 이 말에는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어머님의 마음과 함께 인생의 더 큰 의미와 가르침을 주려는 깊은 속내도 엿보입니다. 축구선수에게 축구는 직업이기 때문에 잘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잘하지 못했을 때, 어쩌다 실수를 했을 때 그러한 잘못의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선수의 몫입니다. 그래서 축구선수는 누구보다 잘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하지만 잘하는 것에, 실수없이 하는 것에 매달리게 되면 몸은 굳어지고, 마음은 조급해집니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혹시 이러다가 잘못되어 ‘역적’소리를 들으면 어떡하나, 나 때문에 실망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나 등등 잡념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어 결국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토록 잘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실망스러운 결과만을 얻게 되었을 때 옆에서 흥분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보다 선수는 자기 자신을 더욱 비난하고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되며 때로는 기나긴 슬럼프를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아이들을 키울 때도 나타납니다.

얼마 전 학교 가기를 싫어하고 시험 때만 되면 배가 아프고 정신이 멍해지며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데도 평균 이 삼십 점을 맞는다는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지능검사를 해보니 평균 상에 해당되는 좋은 지적 능력을 가진 아이여서 공부를 잘하면 잘했지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점수를 맞을 만큼 머리가 나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어머니에게 있었습니다. 아이가 하는 말이 시험을 치루기 한 달 전부터 엄마는 계획표를 세워놓고 아침 6시에서 7시까지, 그리고 저녁에는 11시가 넘도록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시험보기 삼사일전부터는 엄마가 직접 작사작곡한 ‘백점송’을 불러줍니다. 이러다보니 아이는 혹시 실수를 하면 어떡하나 잔뜩 긴장하게 되고, 시험을 잘보지 못하면 엄마가 화를 내고 자신을 미워할까 겁이 나서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고치고 또 고치다가 문제를 반도 못 풀고, 맞게 푼 문제도 고쳐서 틀리게 되는 일이 허다한 것입니다. 이렇듯 지나친 압박감과 긴장감은 결과를 망칠 수 있는 것이기에 차선수의 어머님도 차선수가 제 기량을 잘 발휘하기 위해선 편안함을 주려고 애쓰셨을 수 있겠습니다.

또한 무언가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즐기는 것’입니다. 잘하는 사람은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잘하는 사람에 비해 기술과 능력이 딸릴 수 있으나, 발전하는 과정과 속도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열정을 갖습니다. 하지만 잘하기는 하나 자신의 일을 즐기지 못하면 열정은커녕 자신의 일을 지루해하고 건성으로 하게 됩니다. 해야 하는 일이기는 하나,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돈 때문에,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기에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열정을 갖고, 즐기면서 하는 사람에게 기술과 능력면에서도 결국 추월을 당하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그 여학생의 경우에도 결코 능력이 없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자신을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는 공부였기에 공부는 끔찍하고 몸을 아프게 해서라도 피해야 할 것이 되었습니다. 자식을 유능하게 키우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가 되나, 결국 자식을 무능하게 만드는 결과만을 초래한 것이지요. 차선수의 어머님은 자신의 아들이 축구를 잘하는 로봇이 아니라 축구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그래서 힘든 고비가 있어도 열정을 갖고 극복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일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좌절이 있더라도 금세 주저앉거나 포기하지는 않을테니까요.

이번 월드컵의 사령탑이셨던 ‘허정무’감독님의 이야기도 빠트릴 순 없겠지요. 남아공으로 떠나기 전부터 허정무 감독님께서는 이번엔 선수들이 ‘즐기는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누누이 했습니다. 본인이 월드컵에서 뛰던 시절에는 ‘다리몽둥이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조국을 위해서 싸워야하는’ 것이 축구였고, 이러한 비장한 각오로 경기를 하다보니 오히려 몸이 경직되어 더 나쁜 결과를 얻었다며,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즐기는 축구를 젊은 선수들이 했으면 좋겠고, 이번 월드컵이 그러한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죽기 살기로 해야 하는 것 대신에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즐거움으로 느끼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시험이 자신을 좋은 아이, 나쁜 아이 혹은 똑똑한 아이, 무능한 아이, 혹은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판별하는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것을 검증하는 기회로 가슴이 떨리고 긴장될 수 있으나 궁금하고 흥분된 경험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교훈을 얻으셨다면 아이가 시험을 보고 돌아왔을 때 “잘봤어. 못봤어?”라는 질문대신 “시험은 편안하게 치뤘니?”라고 물어주고, 시험 결과를 들고 온 아이에게 “잘했어!” 혹은 “이런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 오다니!”라고 하는 대신에 “정말 기분이 좋겠구나.”, “네 스스로가 자랑스럽겠는 걸!”,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속상하겠구나.”라고 말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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