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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기에 대한 잘못된 생각
  | Name : 이보연  | Date : am.9.29-10:04
천재교육 - 꾸러기 논술 2010년 10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동기에 대한 잘못된 생각

                                           이 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4학년인 민수는 원어민 교사로만 구성된 명망높은 어학원에 주 2일, 3시간씩 영어를 배웁니다. 영어 숙제는 딴 짓 안하고 꼬박 해도 두 세 시간이 걸리는데, 특히 에세이와 영어 동화책 독해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습니다. 민수는 수학 전문학원에도 다니는데, 주 3일 2시간 수업이며, 1주일에 한번 과학 실험 특강이 있는 날은 3시간 반 수업을 하게 됩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즌에는 토요일마다 2시간씩 시험대비 수업을 듣습니다. 수학학원의 숙제도 만만치 않아서 ‘창의심화’문제는 몇 시간을 들여다보아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국어, 사회, 한자는 학습지로 공부를 하며 각각의 학습지 선생님들이 주 1회 방문 교습을 해줍니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수요일은 반 친구 몇 명,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또다른 아이들과 함께 스포츠 교실에서 축구 수업을 받습니다. 토요일에는 논술토론 수업이 있고, 놀토 오전에는 한 달 전까지 필리핀 아줌마 ‘베티’와 영어 회화 수업을 했는데, 2주 전부터는  ‘숲 체험 교실’에 등록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에는 영어와 수학학원에서 실시하는 온라인 테스트를 치루고, 마저 끝내지 못한 숙제들을 해야 합니다.

민수는 본디 떼를 심하게 쓰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릴 때는 유순하면서도 똘똘해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독차지했었지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도 호기심이 많아 한글을 어렵지 않게 배웠고, 유치원의 영어시간에는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에 재능이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던가 싶을 정도로 배우기를 싫어하고 거의 매일같이 엄마의 잔소리를 듣습니다. 학원에 다녀오면 8시가 넘는데, 저녁먹고 씻으면 금세 잘 시간이 됩니다. 그러니 빨리 숙제를 끝내지 않으면 자정을 넘겨서야 잠자리에 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수는 숙제를 하면서도 딴짓을 하고 목이 마르다며 자꾸 냉장고를 열어 제끼거나 텔레비전을 훔쳐봅니다. 엄마가 빨리 하라고 소리를 치면 “어렵다”, “모르겠다”, “하고 있는데 왜 자꾸 뭐라 하냐.” 등등의 불만을 쏟아냅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엄마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포기하고 아이의 옆에 붙어앉아 아이를 다그치며 숙제 감독을 합니다.

민수 엄마도 공부가 썩 재미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민수가 공부를 또래보다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민수네 반의 아이들 대부분이 민수처럼, 그 중의 몇몇은 민수보다 더 많은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다 하고 있는 것인데, 왜 민수는 그리 투덜대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이 미래를 위한 것임을 왜 모르는 것인지 민수 엄마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 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려면 어릴 때 조금 힘들더라도 참고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언제쯤이면 민수가 알 게 될까 답답한 마음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요즘 아이들의 대부분은 민수처럼 여러 가지 과외활동을 하느라 바쁘게 지냅니다. 남들보다 많이 배우고 빨리 배워야 미래의 성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란 부모의 생각 때문이지요.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가 미래에 유능하게 성장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종종 좋은 대학은 성공을 위한 열쇠가 되기 때문에 부모들은 박봉의 월급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 비싼 과외비와 학원비를 감수합니다. 아이들이 학원이 많다며 칭얼대고 숙제가 많다고 짜증을 내면 부모는 “다 너를 위해서, 너의 행복을 위해서 이러는 거야.”라고 하면서 야단을 치고 매를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도대체 언제까지 현재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어린아이의 삶이란 그저 어른의 행복한 삶을 위해 참고 견디며 희생해야 할 정도로 가치가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유아기’, ‘아동기’, ‘성인기’, 그리고 ‘노년기’처럼 몇 가지의 큰 단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단계는 모두 다 중요하며 그 고유의 특성이 있는 것인데, 현대의 아이들에게 ‘유,아동기’는 그저 성인기를 위한 준비 단계로서 하찮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본디‘유, 아동기’란 기계적인 학습보다는 놀이를 하고, 글로 익히기보다는 직접 여러 가지 다양한 일들과 부딪치며 경험으로 체득하는 시기이며, 부모로부터 보호와 사랑, 격려를 받고, 또래와는 즐거움과 소속감을 나누어야 하는 시기인데, 현대의 부모들은 이러한 것을 하면서 유아동기를 보내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며, ‘미래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유, 아동기의 욕구를 누르고 참아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싼타할아버지를 믿는 어린 아이들에게 지금 고생하고 참으면 미래에 안정적이며 연봉높은 직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일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펄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지요. 많은 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고 소리높여 주장합니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미래는 더욱 더 두려운 것이 됩니다. ‘지금도 불행한데, 미래는 얼마나 더 불행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상담실에 만난 많은 7세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것을 겁내 합니다. 지금보다 공부와 시험이 더 많은 것이 두렵기 때문이지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5교시 수업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특목고에 갈 수 있을 지, 없을 지에 고민합니다. 반에서 5등안에 들었던 중학생 여자아이는 특목고 입시에 떨어지고는 자신을 패배자로 생각하며 공부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행복한 성인기로 가는 길에서 이미 자신은 멀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아이들 모두 현재가 즐겁지 않고, 버거운 아이들입니다. 반면 하루 하루가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은 ‘내일은 또 어떤 즐거운 일이 기다릴까?’라는 두근거림을 안고 잠자리에 듭니다.

본디 초등학생 시기의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를 나눈 에릭슨은 초등학교 시기를 근면성의 시기라고 명명했을까요! 과거의 아이들은 이 나이가 되면 아빠가 괭이질을 어떻게 하는 지 보고 자신도 그것처럼 해보려 애썼고, 여자아이들은 엄마처럼 예쁘게 계란 후라이 하는 법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부모가 요구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에 크게 과하지만 않으면 아이들은 기꺼이 배우려하고, 그러한 배움에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감은 더 높은 수준의 배움에 대한 동기로 이어지곤 하였지요.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근면성보다는 열등감을 더 많이 느낍니다. 과거 세대에 비해 영어 발음이 놀랄만큼 좋아졌고, 더 어려운 수학문제를 척척 풀지만 툭하면 “못하는 데”, “할 수 없어.”, “어렵잖아!”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것이 열등감의 증거입니다. 모두 자신의 능력과 수준보다 더 높은 것을 요구받아 과부하에 걸렸기 때문이며,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행복은 ‘현재’에 달려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현재 행복하게 느끼고 있는 지, 아이에게 발달수준에 맞는 요구를 하고 있는 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수준에 맞는 학습경험을 제공하고 기대를 할 때 아이들은 가장 유능하게 발달하며 미래에 도전하려 합니다. 부모 자신이 ‘아동기’를 존중하며, 자신의 아이가 ‘아동기’를 아이답게 보낼 수 있게 배려한다면 바로 그것이 행복한 성인기의 초석이 됩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는 아이들을 아이답게 키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아이를 현명하고 행복하며 유능한 아이로 만들고 싶다면 아이를 아이답게, 아이에게 맞는 자극과 경험을 제공하도록 더 많이 애쓰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진짜로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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