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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라! 제대로 놀아라!
  | Name : 이보연  | Date : pm.2.12-02:34
CJ-magazine, nim(님) 2007년 2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놀아라! 제대로 놀아라!

                                                     이 보연 (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40대 초반의 은행원인 동규씨는 늘 머리가 맑지 않다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직장일 것 같아 선택했지만 IMF 이후로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걱정에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의 고된 근무에도 불평 한마디 못한다. 일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다음 주가 걱정이 되어 집에서 몸을 축적하느라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같은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활동만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월요일만 되면 온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파오니 큰 병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제 대기업의 신입사원인 진수씨도 항상 무엇인가 쫒기는 기분에 마음이 불편하다. 대학교 3학년때부터 누구보다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한 덕분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떡하니 붙었지만 그래도 더 잘하고 남보다 뛰어나야한다는 생각에 늘 조바심이 든다. 책을 좋아했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지금 하는 일과 관련된 서적만 읽게 된다. 동시에 영어 학원과 중국어 학원을 다니다보니 친구와 수다 떨 시간도 적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하니 막혀온다.

동규씨와 진수씨가 마음이 불편하고 몸이 아픈 이유는 모두 ‘잘 놀지 못해서’이다. 한국처럼 급격히 빠른 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놀이’보다는 ‘일’이 상대적으로 훨씬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필자가 초등학생인 시절, 그 때는 아침마다 진풍경이 일어나곤 했다. 동사무소의 마이크에서 울려 퍼지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를 들으며 온 마을 사람들이 빗자루와 삽을 들고 청소를 하고 마을을 정비했었다. 그 당시엔 ‘휴가’라는 말조차 생소했으며, 놀이는 惡하고 소모적인 것을 암시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일은 중요하고 가치로우며 생산적인 것이고, 이에 비해 놀이는 비생산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놀이와 같은 비생산적인 활동이야말로 일의 생산성을 극대화시키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휴식이론에서는 인간은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놀이를 한다고 보았다. 라자루스는 인간은 힘든 노동을 하고 나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갈되면 휴식과 수면을 통해 이를 충전하는데 완벽한 재충전을 위해서는 현실과 벗어나 일과 반대되는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놀이라고 보았다. 또한 패트릭은 현대의 정신노동으로 쌓인 피로는 뛰기, 달리기, 던지기 등 원시 활동과 관련된 놀이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만일 우리에게 일요일이 없다면, 여름휴가가 없다면, 연휴가 없다면 일이라는 것은 즉시 고역으로 변할 것이며, 생산성은 극도로 떨어지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놀이는 비생산적이지만 실은 생산성의 전제가 되는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동규씨와 진수씨에게는 재미있게 잘 놀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표정을 보니 내 처방이 영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눈치이다. 빨리 머리 아프고 초조해지는 것을 없애고 일을 잘하고 싶은 데 뚱딴지같이 놀라고 말을 하니 어리둥절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일을 잘하려면 놀이를 통해 정신적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한다. 그것도 놀이답게 제대로 놀아야 한다. 제대로 논다는 것은 놀이의 정의에 충실하게 논다는 것을 뜻한다. 놀이의 정의에 따르면 놀이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노는 사람에 의해 자유롭게 선택되어지는 자발성에 기초하며 즐겁고 기쁜 것이다. 즉, 어떤 외부의 압력 없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 재미있게 노는 것이 놀이이다. 자발성은 자유를 느끼게 하고, 재미는 더 많은 재미를 위한 창의적 활동을 낳는다. 또한 이러한 놀이경험은 뻔한 일상 속의 자신에게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주며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낳는다. 이러한 놀이의 정의에 따르면 승진을 위해 주말에 직장상사와 골프를 치는 것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며, 일주일을 잘 버티기 위해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만 보는 것도 놀이가 아니다. 몸을 고되게 움직이는 암벽 등반이더라도, 기저귀를 하루종일 빨아대는 보육원 자원봉사 활동이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즐거움을 느낄 때 이것이 바로 놀이가 된다. 얼핏 보면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놀거리가 많아 보인다. 대형 놀이공원에, 각종 게임에, 별별 유흥시설이 다 있고 이벤트 회사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용하고 나서도 왠지 썩 즐거웠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것은 놀이를 수동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획자가 고안하고 만든 놀이에 돈을 내고 따라가면 그만이다. 편하기는 하지만 놀이의 효과 또한 그만큼 반감된다.

동규씨와 진수씨에게는 무엇을 하며 놀 것인지 결정하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스스로 하기 원하는 것이며, 하는 동안 즐거워야 하고,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더욱 좋겠다고 했다. 현대의 놀이문화는 컴퓨터, 텔레비전, 휴대폰과 같이 기계와 함께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이왕이면 사람과 소통하면서 소속감도 느끼고 책임감을 배우고 공동체 의식을 높일 수 있으면 더욱 좋기 때문이다. 몇 주 후 다시 만난 동규씨는 그새 얼굴이 피었다. 대학시절 ‘산악반’ 동아리를 했는데, 거의 15년 만에 연락이 되는 친구들을 규합해 북한산 등반을 갔다 왔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모처럼 운동을 하니 몸도 개운하고, 머리 아픈 것도 가셨다며 선생님도 등산을 해보라며 권하기까지 한다. 진수씨는 쉽게 고르지 못하더니, 대학 때 가족과 함께 패키지 여행으로 가보았던 태국을 이번 설 연휴에 휴가를 좀 더 내어 친구와 둘이서 배낭여행을 해보기로 결정했단다. 돈과 시간이 좀 많이 들어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 곳에서 자유를 경험해보고 오기를 바라며 진수씨의 멋지게 바뀐 모습을 기대한다.  일을 잘 하기 위해 열심히 놀고, 그리고 잘 놀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즐거운 인생이다.

* 이보연놀이치료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18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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