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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지금 상상력의 날개를 다는 중
  | Name : 이보연  | Date : pm.7.6-11:33
베네세코리아 2006년 7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지금 상상력의 날개를 다는 중

이 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세 돌 된 아이와 엄마가 놀고 있는 모습이다.

엄마 : (아기 인형을 들고 아기목소리로 칭얼거리며) “형아, 형아! 배고파. 먹을 거 줘!”
아이 : “음. 알았어, 알았어. 기다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동그란 구슬을 집어        들고는 아기인형 입에 갖다 대며) “여기, 빵 있어. 빵 먹어”
      (얼굴을 아기인형에게 들이대며) “맛있어?”
      (장난감 주전자를 들고 컵에 따르는 시늉을 하며) “쭈르륵”, “자, 물 마셔!”

  한편 엄마와 산책을 하고 있는 28개월짜리 아기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며 “빠이 빠이,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다른 쪽에서는 붉은 색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마치 ‘쾌걸 조로’인 것처럼 행세하는 어린 꼬마도 있다.

  두 돌이 되기 전의 아기는 장난감 빗으로 자신의 머리를 빗으려 하고, 가짜 우유병을 빠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상상의 세계가 열리는 것은 24개월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상상력은 언어의 발달 그리고 추상적 사고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알고 있지 못한 것을 말하고 상상할 수는 없다. ‘괴물’이 무엇인지를 알고 말할 수 있어야 괴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며, ‘우주’라는 단어를 알아야 ‘우주여행’ 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돌부터는 언어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이다. 언어의 발달은 당연히 사고의 확장을 일으킨다. 두 돌 이후가 되면 아이들은 언어와 사고의 확장을 밑천 삼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이리 저리 갖다 붙이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것이 상상력이며 창의성인 것이다.

  이 시기 아이들의 상상력은 인형에게 우유를 먹이고 머리를 빗겨주며, 블록을 자동차인 것처럼 사용하는 식의 사물을 사용한 놀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일수록 사물의 외형이나 본래 기능에 덜 구애받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필요할 때 상상력이 덜 풍부한 아이는 자동차와 비슷한 모양들 중에서 자동차를 쓸 것을 고른다면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는 그러한 것들이 없을 때 주변에 있던 동그란 쿠션을 집어 들고 “이건 새로 나온 자동차래, 이건 우주에도 갈 수 있대.”라고 말하는 것으로 간단히 문제를 해결한다.

   사물을 사용한 놀이에서 뿐만 아니라 언어사용에 있어서도 상상력을 발휘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난다. 두 돌에서 세 돌 사이의 아이들은 흥미 있는 운율을 가진 의성어와 의태어에 매료되며, 나름대로 이를 응용하고자 한다. 엄마가 아이와 자동차 놀이를 하면서 “부릉 부릉 부르릉”하고 말하자 아이는 깔깔 웃으며 “부릉 부릉 부르릉? 부릉 부릉 뿌르릉! 뿌릉 뿌릉 뿌르릉! 뿌르르릉 뿌르르르르릉 뿡뿡뿡!”하며 계속 말장난을 이어 나간다. 누군가 ‘방구’라고 소리치면 아이들은 “방구, 뽕, 설사 뿌지직, 똥꾸, 오줌, 오빵, 방구빵...”하며 말도 안되는 말을 지어낸다. 이러한 것이 바로 말을 이용한 상상놀이인 것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이제 사물과 말을 이용한 것을 넘어서 ‘역할’에 대한 상상까지 넓혀진다. 두 돌 경에 어설프게 시작된 엄마, 아빠 놀이는 세 돌이 넘어서면서는 훨씬 정교해진다.  아이들은 의사, 간호사, 선생님, 수퍼마켓 주인, 주유소 직원 등 다양한 역할을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아이들은 이제 사물의 기능을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어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한 편의 드라마를 꾸며낼 만큼 짜임새 있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상상을 잘할 수 있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어 및 사고수준의 발달이다. 이와 함께 두 돌에서 네 돌 사이 아이들이 갖는 사고의 특성도 상상력에 공헌을 하는 데, ‘물활론적 사고’가 바로 그것이다. ‘물활론적 사고’란 모든 것은 생명이 있다고 보는 생각을 말한다. 아기들이 길을 걸어가다 돌에 걸려 넘어지면 그 돌을 때리고 훈계하는 것도, 달님이 자꾸만 자신을 쫒아온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형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바로 이 시기 아이들이 갖는 ‘물활론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아이를 상상과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아동발달과 관련한 연구들은 상상력은 아이의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밝히는 결과들을 보여준다. 상상을 잘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좀 더 즐겁게 놀이하며, 주의집중력이 좋고, 자기 통제능력이 우월하며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또한 상상력이 많은 아이들은 단순한 사물을 보다 다양하고 개성 있게 사용하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확산적 사고’ 패턴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산적 사고는 문제나 상황에 대해 틀에 박힌 것과 대립되는, 새로운 반응을 만드는 것으로 그 자체가 창의적인 사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확산적 사고’와 반대되는 것이 ‘수렴적 사고’인데, 수렴적 사고는 질서정연하고 보다 전통적인 해결책을 지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 모두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어느 한 유형을 보다 많이 사용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확산적 사고는 창의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아이의 추상적 사고의 발달과 융통성을 촉진시켜 문제해결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상상을 잘하는 아이는 놀이를 할 때 자동차가 필요한 순간 쓸 만한 장난감 자동차가 주변에 없어도 계속 놀이를 진행시킬 수 있다. 옆에 있는 상자가 자동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상자는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소꿉놀이에서 식탁으로 사용되던 거였지만, 상상이라는 마법의 가루를 뿌리면 그 상자는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집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상력이 부진한 아이는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놀이는 거기에서 중단된다. 이는 사고의 경직을 보여주는 것이며, 제한된 문제해결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상상놀이, 특히 역할상상놀이를 많이 한 아이는 또래와 보다 잘 협동하며, 사회의 규칙과 규범을 잘 지키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많다. 두 돌에서 네 돌 사이의 아이들은 매우 열심히 역할놀이를 한다.  자신이 아기도 되보고, 엄마, 아빠도 되보고, 놀이방 선생님도 되어보는 놀이를 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배우는 것이다. 21세기가 바라는 인간은 바로 창의성을 갖추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동이 가능한 사람이다. 바로 이러한 기본 토대가 되는 것이 아이의 상상력이고, 이러한 상상력은 두 돌 무렵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아이의 상상력을 높여주려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우리는 흔히 아이들에 비해 어른들은 상상력이 빈약하다고 말하지만 아이의 상상력은 어른의 도움이 있어야 발달될 수 있다. 상상력이 꽃을 피우려면 아이는 먼저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만 한다. 기본도 없이 응용이나 변형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도 상상을 하려면 기본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즉, 아는 만큼 상상도 풍부해진다.
  
   두 돌이 지난 아이들이 쉴새없이 말을 따라하고 ‘이게 뭐야?’하며 사물에 호기심을 표현할 때 부모는 아이에게 언어적 자극을 제공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또한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새로운 것을 덧붙여 줌으로써 아이의 사고가 보다 확산되고 통합되게 해주도록 한다. 예를 들어, 이미 자동차와 배를 알고 있는 아이와 블록놀이를 하고 있다고 가상해 보자. 엄마는 아이와 놀이하면서 블록으로 만든 자동차에 인형을 태우고 부릉 부릉 가는 척을 하다가 “얘는 바다에 갔대. 바다에 가려면 배가 필요한데?”하며 블록을 조금 손봐 배 모양을 만든다. 잠시 후에는 “이제 얘는 하늘에 있는 구름을 보고 싶어졌대.”하면서 비행기를 만든다. 더 나아가 로켓트, 잠수함 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비슷한 것들을 짝 지우는 ‘유목화’능력을 촉진하면서도 차이점을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상상이라는 것이 갑자기 생뚱맞은 것이 튀어나오는 것이라기보다 생각이 점차 발전하고 다양성을 모색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유목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상상의 기본이 된다.

   “마치 ~인 것처럼” 실제의 자기 모습과 다른 역할로 가장해보는 역할놀이도 상상력의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역할놀이를 촉진해주려면 부모는 아이가 “~인 체”하는 것에 잘 맞추어 주어야 한다. 30개월짜리 아이가 엄마를 진찰하는 의사선생님의 역할을 한다면 엄마는 꼬박 꼬박 아기에게 존댓말을 하며 의사선생님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아기가 의사선생님 역할을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은밀한 지도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기가 청진기만 대고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한다면 “선생님, 주사 맞아야 해요?”하는 식으로 다음 활동을 암시해줄 필요는 있다. 역할놀이에 사용할 수 있는 소품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부모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할수록 역할놀이는 풍부해지고 다양해진다. 책을 읽어주는 것도 상상력을 촉진한다. 사실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책은 상상력의 보고이다. 두 돌이 되면 제법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몸을 뒤트는 데도 붙잡고 이야기책을 끝까지 읽는 데 목숨을 건다. 그것보다는 아이가 책 내용에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면 책의 그림 위주로 상상을 발휘해보는 것도 좋다.

   아이의 상상력은 부모 자신의 상상력과 자녀의 상상력에 대한 부모의 격려와 칭찬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융통성 없이 사실대로만, 논리적으로만 모든 사물이나 상황을 설명하려드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는 자유로운 상상이 갖는 가치를 알지 못한다. 길을 걷다가 우스꽝스러운 돌맹이를 봤을 때, 아이와 그것을 탐색하고 “와, 이 건 나비같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고, 아이가 블록으로 만든 총으로 “빵”하고 쐈을 때 가슴을 움켜쥐며 “윽!”하고 죽는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블록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높여주는 매우 좋은 장난감이지만 매뉴얼에서 나온 대로만 블록을 꾸미길 아이에게 강요한다면 그건 비싸기만 한 아무 소용없는 장난감이 된다. 블록을 이리 저리 맞춰볼 때 부모는 아이가 만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아이의 자신감을 높여주어 좀 더 조작해보고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아이의 상상력을 격려해주는 부모의 태도야 말로 다른 어떤 요인들보다도 아이의 상상력을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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