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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도 부모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 Name : 이보연  | Date : pm.6.25-05:05
천재교육 - 꾸러기 논술 2009년 7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짜증도 부모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이 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하얀 피부에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그리고 뚜렷한 이목구비의 인정이는 한 눈에 봐도 참  예쁜 아이입니다. 공부도 제법 잘하고 그림에도 소질이 있답니다. 이런 아이가 무슨 이유로 친한 친구가 없다는 고민을 안고 상담센터를 찾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궁금증은 아이와 마주 앉은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습니다. 힐끗 보았을 땐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인정이의 새초롬한 표정은 가까이서 살펴보니 냉소적인 표정이었고 중간 중간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한 숨을 내쉬고 가끔은 앙칼진 목소리로 “네?”라고 반문을 할 때면 9살 짜리 소녀라기보단 부부싸움으로 한껏 신경이 날카로와진 아줌마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쁘고 똑똑하긴 하지만 늘 화가 나있어 보이고 짜증이 가득찬 인정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또래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인정이 어머님에게 들은 이야기론 인정이는 어렸을 때부터 꽤 까탈스런 아이였답니다. 잠도 적은 데다가 입도 짧고 엄마에게만 붙어 있으려 해서 엄마를 매우 힘들게 하였답니다. 인정이 어머님 말만 들으면 인정이는 태어날 때부터 짜증이 가득한 아이인 듯 싶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물론 까다로운 기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기르기가 어렵고 이 때문에 부모는 육아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질이 까다롭다고 해서 커서도 짜증만 내고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기질이 아이의 일생을 결정한다고 친다면 순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성공한다는 뜻이기도 한 데, 아무리 순한 기질을 갖고 태어나더라도 좋은 양육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거나 반대로 매우 위축되고 우울한 양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은 부모의 육아를 좀 더 쉽게, 혹은 어렵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아이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며 오히려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이 성격 형성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인정이가 냉소적이고 짜증스런 모습을 보이게 된 것에도 실은 엄마와의 관계가 한 몫 했습니다. 결혼 초부터 시작된 고부간의 갈등은 인정이를 임신했을 때 최고조에 달했고 심적인 스트레스가 많아서인지 인정이를 낳고서도 아이가 예쁘기는 커녕 부담스럽기만 했습니다. 청소를 해놓자마자 장난감을 엎어놓고, 고단한 몸을 누이려하면 울어대는 인정이가 점점 미워지더니, 언제부터인가는 아이가 요구를 하면 짜증부터 치밀어 오르고 들어줄 수 있는 것도 괜히 튕기다가 들어주며 아이를 약올리기도 했습니다. 인정이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거나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 올라 잔소리를 늘어놓게 됩니다. 인정이가 “엄마!”하고 부르기만 해도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런 투로 “뭐?  또 왜? 응?”하며 말꼬리부터 올라가버리고, 아이가 잘못을 하면 “너, 또 지금 뭐 한거야?! 넌 도대체 왜 그러니? 으이구. 지겨워. 못살아.”라며 십여분을 잔소리를 해야 속이 풀립니다. 때론 아이 앞에서 “악~”하며 히스테리 환자같이 소리를 고래 고래 질러댄 적도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인정이도 엄마의 말투를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가 실수를 하면 엄마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친구에게 면박을 줍니다. 한심한 듯 쳐다보는 눈초리하며, 혀를 끌끌 차는 것 까지, 그리고 마치 ‘너란 아이는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이니 상종하는 내가 미쳤지’라는 투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까지 꼭 빼다 박았습니다. 인정이가 어렸을 땐 그런 인정이의 모습이 나름 카리스마가 있었는지 또래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도 하더니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부터 또래들은 인정이를 “쟤 뭐야?”하는 투로 쳐다봅니다.

인정이 어머님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지으십니다. 인정이에게 미안하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꾸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합니다. “그래도 전 인정이를 때린 적은 손에 꼽아요. 다른 엄마들에 비해선 전 정말 안때렸거든요.”, “아무도 절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 혼자 인정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도 인정이는 떼를 쓰면 잔소리는 좀 들어도 제가 다 해줬잖아요? 하지만 전 인정이 키우느라고 아무것도 못했다구요!”  배울 만큼 배우시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지만 어떤 면에선 인정이 어머님은 아직도 아이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 눈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한 줄 알지만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에게 회초리를 휘둘지 않고 몸에 흉터를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가 상처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때론 매질의 아픔보다 엄마의 비웃음이, 차디찬 모습이 아이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부모가 있다는 것은 아이에겐 커다란 빽을 가진 것처럼 든든하게 느껴져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부모에 의해 비난당하고 거부당하게 되면 아이는 고아와 다름없습니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땐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아이를 엄하게 꾸짖는 것은 어른의 역할이나 아이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너 때문에 엄마가 못살겠다. 힘들어 죽겠다’며 아이를 비난하는 것은 마치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거둬 키워야하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역할인데, 이에 대해 위세를 부리고 마치 큰 아량이나 베풀듯이 행동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렵고 힘든 점은 아이에게 하소연하고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나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아이가 인정이처럼 짜증이 많고, 매사 부정적이라면 한번쯤은 엄마 자신을 되돌아봐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표현하는 방식, 세상을 보고 느끼는 방식은 부모님의 방식과 똑같습니다. 부모님이 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다면 아이 역시 그러할 것이며, 부모님이 세상을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아이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가끔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힘을 내려해도 세상살기가 팍팍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것이 전적으로 아이 탓도 아니고, 아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이를 원망하고 화를 낼 순 없습니다. 어느 면에서 보나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약한 존재입니다. 부모님이 힘이 든다면 아이들은 더 힘이 듭니다. 강한 자가 약한 이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좀 힘이 들더라도 부모라면 아이를 위해 힘을 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는 언젠간 부모처럼 어른이 될 것이고, 이렇듯 어른다운 부모를 둔 아이는 분명 매우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어른다운 어른으로 키우는 일, 이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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