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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지금 또래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
  | Name : 이보연  | Date : am.8.1-12:52
베네세코리아 2006년 9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지금 또래와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중

                                                            이 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돌 무렵의 아기들도 옆에 다른 아기가 있으면 쳐다보고 손을 뻗쳐 쿡쿡 찔러보기도 하지만 이때의 모습을 보면 서로를 마치 다른 종족인 것처럼 이상하게 쳐다보는듯 한다. 그러나 두 돌배기 아기들은 서로를 만나면 반가워하며 아는 척을 하고 미소를 짓고 손을 뻗어 만져보려고도 한다. 이는 또래와 자신을 비슷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두 돌에서 세 돌 사이의 아기들은 또래에게 관심을 많이 보이지만 부모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또래와 잘 노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또래와 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면 같은 공간에서 놀기는 하지만 상호 교류는 거의 없다. 같은 장난감을 갖고 놀지만 따로 노는 식이다. 예를 들어 블록 놀이를 하는 데, 한 아이는 자동차를 만들면 다른 아이는 비행기를 만드는 식이다. ‘붕붕’, ‘휘~잉’하고 소리를 내고 움직이다가 충돌도 하고 잠깐 같이 놀기도 하지만 곧 다시 ‘너는 너, 나는 나’ 식대로 논다. 이렇게 같이 있지만 상호작용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 평행선과 같은 관계라 해서 이 시기의 놀이를 ‘평행놀이’라고 부른다.

자기 중심적인 아이들

   2세에서 3세 사이의 아이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이것은 이기적, 깍쟁이같다라는 뜻이 아니라 인지적인 능력이 아직 미숙해 자신의 관점 외에는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관점과 외부의 관점을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사고는 또래와의 관계에서도 종종 나타나 갈등을 초래한다. 친구가 자기 장난감을 만지면 자기 것인데 만졌다고 못 만지게 하다가 친구의 새로운 장난감을 친구가 못 만지게 하면 못 만지게 했다고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를 친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자기도 그랬으면서...”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겠지만 아이에게는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인 것이다.
   아이들의 자기중심적인 면은 또래간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옆에서 듣고 있자만 “저것들 바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화는 일방통행이고 생뚱맞기 그지없다. 서로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그러다가도 같이 낄낄거리고 웃다가 또 다시 생뚱맞은 대화를 이어간다. 실은 이 시기의 아이들은 또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반응 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대화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래와의 놀이를 할 때도 아이의 자기중심적인 면들은 여지없이 나타난다. 같이 놀던 친구가 넘어져 다쳐 울고 있는데도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거나, 새로운 친구가 맛있는 걸 먹고 있으면 자기와 같이 놀고 있던 아이를 제쳐두고 그 아이에게 달려가는 것 등등 어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을 나타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부모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일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다. 2세에서 3세 사이의 아이들은 이 물건이 누구의 것인지를 아는 소유권에 대한 인식이 생긴다. 그러면서 이 규칙에 매우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하는 데, 이때도 자기중심적이어서 자신이 규칙을 어기는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규칙을 어길 때에는 매우 심하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물건 뿐 아니라 가족의 소유권까지 지키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핸드폰을 아빠가 사용하려고 하면 울면서 “이건 엄마 꺼야.”하며 못쓰게 말리기도 하고, 손님이나 또래친구가 가족의 물건을 사용하려고 하면 손도 못 대게 하는 경우도 많다. 장난감을 갖고 서로 다투는 2~3세 아이의 모습은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의 하나이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는 부모는 ’도대체 우리 아이가 왜 이리 욕심이 많고, 이기적일까‘라는 생각에 심란해 질 수 있지만 이것은 이 시기의 아이들이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특성이기도 하다.


또래관계에서 얻는 것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또래와 함께 있기만 하면 장난감을 뺏고 때리고, 어떤 때는 집에 안가고 계속 놀겠다고 떼를 써서 아예 밖에 나가지도 않게 하고 또래와 놀게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물론 2~3세의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다투고, 조금만 맘에 안 맞으면 울고 때리고 할퀴는 일을 많이 한다. 이는 이 시기의 아기들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가 곁에서 현명하게 지도한다면 아이는 보다 적절한 또래관계의 기술을 배우게 된다. 맨땅에서 아무리 허우적거리며 헤엄치는 연습을 했더라도 막상 물가에 가면 제대로 수영을 못하는 것처럼 어떤 일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또래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또래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경험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옆에서 지도해 주어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때론 같이 키득거리며, 때론 서로 장난감이나 음식을 차지하겠다고 다투고 싸우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공유(나누기:sharing)의 개념을 배워나간다. 또한 상대방의 입장과 기분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물론 공유와 공감 능력이 또래와 자주 접촉하기만 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래들과의 만남에서 항상 물건을 뺏기거나 맞기만 한 아이, 반대로 뺏고 때리기만 하는 아이는 이러한 친사회적인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여기에서 어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또래관계를 원만히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다.

부모의 역할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상대와 다투고 있을 때, 어른들의 마음속에는 “나눠쓰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즉, 아이에게 ‘공유’의 개념을 알려주고픈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공유를 잘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른은 먼저 아이의 마음을 공유, 공감해주어야 한다. “**가 이게 정말 마음에 들었구나. 그래서 이것 갖고 놀고 싶었구나.”라고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그런데 ##도 이게 마음에 들어 갖고 놀고 싶은 거구나”하고 상대방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이다. 2~3세의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아이는 갈등상황에서 자신의 감정밖에 살피지 못하는데, 어른이 상대방의 마음까지 볼 수 있게 거울을 들이 밀어준 것이다. 그런 다음 “그런데, 이 장난감은 ## 것이니, 네가 갖고 놀고 싶다면 먼저 물어봐야 한단다. 그럴 땐 친구에게 ‘빌려줘’라고 말하는 거란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했다고 모든 아이들이 제 장난감을 선뜻 빌려주지는 않는다. “빌려줘”라고 말했는데도 “싫어”하고 냉정히 거절당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아이는 좌절하며 다시 떼를 부릴 수 있다. 이 때에도 부모는 부드럽게 말해야 한다. “친구가 안된다고 해서 많이 섭섭했구나. 친구도 지금 저 걸 갖고 놀고 싶은 마음이 너만큼 많은가봐. 그건 친구 것이니 지금 안된다고 한다면 기다려야 한단다. 대신 지금 어떤 걸 갖고 놀 수 있을까?”라고 대안을 제시해준다. 다행히 2~3세 아이들은 감정이 변덕스럽게 잘 변하는 편이어서 울적해하다가도 쉽게 마음이 풀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속상해 하며 뾰루퉁하지만 엄마와의 신체놀이 몇 가지만으로 기분이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난감을 빌려주지 않았던 상대 아이도 엄마와 노는 그 아이가 부러워지게 되고, 자신의 장난감을 옆으로 밀어내며 자신도 그 놀이에 끼고 싶어한다. 엄마와 아이, 그리고 상대아이 셋이서 즐겁게 놀이하고 나면 문제의 그 장난감도 어느새 같이 공유하며 놀이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여러 가지 중요한 사회성 기술을 포함하는 것이다. 타협하는 방법, 불가능한 일을 포기하는 방법, 기다리는 방법, 대안을 찾는 방법, 화해하는 방법 등등...
   가끔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부모들을 보기도 한다. 사소한 문제라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지만 아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반드시 해결방법을 보여주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종종 맞고 들어온 아이에게 “맞고만 있으면 어떻게 해?”라고 야단치는 부모도 있다. 아이는 그 순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세상으로 발을 내민 2~3세 아이에게 부모는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안내해야할 인생의 가이드인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부모가 가장 중요하다.

   또래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긴 했어도 여전히 2~3세의 아기에게 부모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오히려 전에 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와 더 많은 상호작용과 놀이를 한다. 틈만 나면 엄마의 무릎을 기어 올라가려 하고, 잘 걷다가도 갑자기 멈춰서서 안아달라고 떼를 부린다. 주워들은 노래와 춤을 부모 앞에서 선보이며 재롱을 떤다. 이 시기의 아이에게 부모는 여전히 크고 대단하며 자신에게 위안과 안전감을 제공하는 존재인 것이다.
   또래와 어울리다가도 갈등상황이 일어나면 이 시기의 아이들은 여지없이 엄마를 찾는다. 평소에는 “내가, 내가”를 외치며 제 스스로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문제가 일어나면 영락없는 아기가 된다. 이때는 이렇게 변덕스러울 때이다. 이 시기의 엄마는 아이의 자율성과 의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아이가 슬프고 힘들 때에는 마음을 읽어주고 보듬어주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그 후에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떤 부모들은 2~3세가 되면 자녀의 친구 사귀기에 열을 올린다. “왜, 우리 아이는 친구와 오랫동안 못 놀죠?”, “자꾸 엄마에게만 매달리려고 해요.”하며 아이의 사회성 부족을 탓하면서도 끊임없이 또래를 갖다 붙인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접하고 또래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나, 아이가 외부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고 엄마에게만 매달리려 한다면 아이의 또래관계보다 우선 부모-자녀 관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래에 대한 건강한 관심은 좋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나친 분리불안이나 외부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는 아이에게는 또래 사귀기에 앞서 부모와의 애착을 공고히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혼자 놀이를 선호하는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충분히 이루어진 다음 혹은  이러한 노력을 병행하면서 또래와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발달에는 역전이란 없다. 앉지 못하는 아이가 설 수 없는 것처럼 부모와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아이는 또래와 관계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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