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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지금 개성을 만들어가는 중
  | Name : 이보연  | Date : am.11.3-02:23
베네세코리아 2006년 10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이 글은 원본글이기때문에 잡지에 실린 글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지금 개성을 만들어 가는 중

                                                     이보연(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갓난아기들을 보면 그 어린 것들이 하는 행동도 제각각이다. 어떤 녀석은 강보에 쌓여진 모습 그대로 얌전히 있는가하면 어떤 녀석은 끊임없이 꼼지락거려 강보가 흐트러지기 일쑤다. 배가 조금만 고파도 목이 터져라 우는 아기가 있고, 주사를 맞아도 눈 한번 깜빡하는 것으로 끝나는 아기도 있다. 이처럼 영아기 아이들도 제 나름대로의 개성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이러한 개성이 보다 확연히 나타나는 시기는 바로 2~3세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유아들은 또래에 반응하는 방식이나 사회적 행동, 성격 등에서 각자의 특성들을 보다 분명히 나타내기 시작한다. 어떤 아이들은 한번 떼를 쓰기 시작하면 쉽게 달래지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공격적, 적대적으로 반응한다. 마트에 가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떼를 쓰는 녀석들이 바로 그들이다. 내성적인 성향이 있던 아이들은 이때가 되면 좀 더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엄마 등 뒤로 숨기 일쑤고 전에는 멋모르고 했던 일도 안하려 든다. 반면에 어떤 아이들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사람들 앞에서 제 장기를 못 보여서 안달인 녀석도 있다. 이렇듯 전에는 미약하게 나타났던 특성들이 2~3세가 되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며, 큰 변수가 없다면 이러한 특성은 평생을 걸쳐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개성의 기초는 기질
아이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형성하게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타고난 기질을 들 수 있다. 기질은 부모 마음대로 만들거나 바꿀 수 없는 선천적인 것이다. 기질은 활동수준, 정서성, 그리고 사회성에 따라 크게 세 가지 - 쉬운(easiness), 어려운(difficultness), 억제하는(inhibition) - 로 나눌 수 있다. 쉬운 기질을 타고난 아이는 잘 자고, 잘 먹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대체적으로 기분이 좋고 변화나 새로운 경험에 쉽게 적응한다. 순한 기질을 가진 2~3살짜리 아이는 놀이터에 나가서도 쉽게 또래나 어른들에게 다가가며 잘 웃고 슬플 때도 쉽게 달래진다. 하지만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2~3세 아이는 이 나이가 되어도 수면습관이나 식사습관 등이 일정치 않아 부모님의 애를 태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 대한 경계가 심해 이때까지도 낯가림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쉽게 기분이 상하며 한 번 울거나 떼를 쓰면 꽤 오래간다. 버릇없이 굴거나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억제하는 기질의 아이는 한마디로 말해 워밍업시간이 긴 아이라 할 수 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지 않고 자기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조금만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면 좋은 방향으로 발달을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스피드 시대’인 요즘에는 부모들이 이러한 유형의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다그치는 바람에 아이들이 자신감을 잃거나 까다로운 기질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기질의 세 가지 유형 중에서 가장 위험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어려운 기질’이다. ‘어려운 기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후에 공격성, 비행 또는 다른 형태의 행동문제를 나타낼 가능성이 많다. 물론 ‘어려운 기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 모두가 행동문제를 나타낸다고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하나, 이러한 유형의 아이들은 다른 기질 유형의 아이들보다 취약함이 많다.  이러한 것을 볼 때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좋은 기질만을 타고나길 바라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많은 연구결과들은 아이의 타고난 기질은 영아기를 거쳐 유아동기와 성인기까지 매우 안정적으로 이어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기질이 아이의 성격과 개성에 큰 영향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부모-자녀 관계 또한 아이의 성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달리 말해 아이가 까다롭고 어려운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하더라도 후천적인 환경적 노력을 통해 보다 좋은 성격과 개성을 갖출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어려운 기질의 아이들이 갖고 있는 취약성은 이러한 아동의 어려움을 잘 다룰 수 있는 지지적이고 따뜻한 부모의 양육을 받을 때 만회될 수 있다.

개성과 부모의 양육태도
부모의 양육태도는 2~3세 아이의 성격형성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순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든 까다로운 기질을 갖고 태어났든 2~3세의 아이들은 자율의 욕구가 생기면서 좀 더 고집스러워지고 빈번히 분노, 떼쓰기, 또는 징징대는 등의 다루기 어려운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한다. “끔찍한 두 살”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부모입장에서는 양육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시기이다. 전에는 유순하기 그지 없었던 아이가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부모는 놀라움과 당황함을  표현하면서 아이의 행동을 지나치게 문제시 하게 될 수 있고, 반대로 까다로운 아이에게는 “얜 원래 이런 얘야”하면서 더욱 거칠게 다루거나 내버려두는 일들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전자의 경우에는 자율성이 억압되고 의존적인 성향으로 발달할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는 더욱 고집스럽고 공격적인 성격 발달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2~3세의 자녀를 둔 부모가 이 시기 아이들이 보이는 자율의 욕구를 적절히 다룰 수 있을 때 아이는 건강한 개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아이의 성격형성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양육태도로는 ‘권위적인 양육’이다. 우리는 흔히 ‘권위있는 부모’라고 하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무서운 부모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건 ‘독재적인 부모’이고 권위있는 부모란 따뜻하고 애정적이면서 동시에 필요할 땐 단호하게 아이를 통제할 수 있는 부모이다. 아이의 자율성을 최대한 지지하고 격려해주지만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여 잘못된 선택이나 행동을 할 때에는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권위적인 부모의 양육태도는 아이에게 안전감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자율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한 성격발달에 필수적이다. 권위있는 부모에게 양육된 아이들은 엄마와 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보다 이타적이며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고 더 높은 자아존중감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개성은 말 그대로 개성
시대와 문화, 그리고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성격유형은 다르다. 과거 유교사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할 것을 요구받았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외향적이며 리더쉽있는 성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맞고 오는 것이 오히려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때리고 오는 아들이 더 자랑스러워진 시대가 되어버렸다. 현대 한국의 부모라면 대부분 자신의 아이가 둥글둥글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을 갖기 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모든 사람들이 사교적이고 낙천적이며 리더쉽있는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는 매우 드물다. 개성이라는 말이 개인 각각의 고유한 성격적 특성을 뜻하는 것이기에 자녀를 키울 때에도 아이의 성격 중 장점을 찾아내어 넓혀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외향적이고 창조적이며 주도적인 인간형이 아무리 현대사회의 트렌드라고 자녀를 이 잣대로 짜맞추려는 것은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일이 된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인정하고, 이러한 기질이 갖는 단점이나 위험 요인보다는 긍정적인 점을 잘 발견하고 그 것들을 발전시키려는 부모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한 동네에 사는 이제 갓 세 돌이 지난 현정이와 미연이는 나이는 같지만 서로 확연히 다른 개성을 보인다. 현정이는 매우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여서 어릴 적에는 외할머니조차 품에 안아보기 힘든 아이였다. 반면에 미연이는 유순하여 모두들 ‘순둥이’라며 ‘이런 아이는 열이라도 키우겠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지금 이 둘이 보이는 행동은 매우 다르다. 현정이가 낯가림을 심하게 할 때마다 현정이의 엄마는 항상 안심시켜주고 “우리 예쁜 아기”라는 말을 항상 해주었다. 놀이터에 나갈 때도 쭈삣쭈삣하는 아이에게 “가서 친구와 놀아라”라고 밀기보다는 아이가 타인들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엄마가 같이 놀아주었다. 그러다보니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가 그렇듯 현정이 또한 감각적으로 매우 예민하여 사소한 것에도 불안해 하곤 했다. 가령 베란다에 거미줄이라도 쳐있으면 “으~ 저게 뭐야?”라고 하면 엄마는 “와, 현정이가 거미줄을 발견했네!”하며 거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이제 현정이는 새로운 사물과 경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호기심을 갖고 다가서게 되었다. 순둥이인 미연이는 혼자 내버려 두어도 그런대로 잘 지냈기 때문에 점차 미연이의 부모는 먹이고 재우는 기본적인 일 외에는 그냥 내버려두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미연이가 두 돌 무렵이 되면서 조금씩 사고(?)를 치기 시작하자 그 때부터 야단을 치는 일이 늘어났다. 미연이는 자신이 조용히 잘 놀고 말썽을 부리지 않을 때에는 별반 관심을 얻지 못하다가 잘못할 때만 야단을 맞는 일이 반복되자 점차 눈치를 심하게 보고, 별 일이 아닌 것에도 잘 울고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현정이의 엄마는 현정이의 기질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접근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면 미연이의 경우는 아이의 좋은 기질을 그냥 썩혀버린 경우라 할 수 있다. 까다로운 기질은 말 그대로 까다롭고 지나치게 예민하여 다루기 어려운 단점이 있지만 반면에 이러한 기질은 후에 민감하고 반응적이며 창조적이고 섬세한 개성으로 거듭날 수 있다. 순한 기질은 적응력이 좋고 긍정적이지만 부모의 태도에 따라 자기 욕구를 억압하고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성향으로도 발전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좋은 개성은 그냥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매만짐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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