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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을 유지할까, 융통성을 발휘할까?
  | Name : 이보연  | Date : pm.5.6-03:56
세상의 모든 이치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양면성이 존재한다. 흑이 있으면 백이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모든 것이 한쪽으로만 쏠려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는 육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도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 선조들의 당파싸움의 피를 이어 받아서인지 확실하게 선을 그어 편을 가르려는 성향이 아주 강하다. 이는 아마도 민족적 특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모 아니면 도’라는 말을 자주 하고 ‘복불복(福不福)’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러한 문화적 성향은 육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아이들은 엄하게 키워야 된다’고 했던 옛날에는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휘어잡아 키웠고, 서양문물의 급속한 침투로 미국의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와 이제는 ‘민주적인 부모 육아법’이 유행처럼 번지자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에게도 자율성을 키워줘야 한다며 제재 한번 가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 아니 그뿐이면 그래도 낳은 편이다. 주위에서 참다못해 아이를 나무라면 왜 아이 기죽이냐며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다. ‘아이를 칭찬으로 키워라’하면 싸움을 해도 칭찬하고, ‘사랑으로 키워라’ 하면 야단 한번 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일관성 있게 키워라’ 하니 시간표까지 짜놓고 아이들의 숨통을 조이기 일쑤다. 물론 칭찬, 자율성, 사랑, 일관성,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은 없다. 문제는 흑백논리에 익숙한 우리 부모님들의 융통성의 결여다. 물론 이는 부모들만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필자와 같은 전문가들의 책임이 더 크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육아정보나 부모교육은 대부분 전문가들에게서 나온 정보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련서적이나 정보들을 읽다보면 역시 전문가들도 전혀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칭찬으로 아이를 키우라는 주제의 글을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하라는 소리만 있지 야단치라는 소리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아이를 칭찬으로만 키울 수 있겠는가? 또한 칭찬만 받고 자란 아이는 조그만 실패에도 금세 좌절할 것이며 그만큼 좌절을 극복할만큼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칭찬도 받고, 야단도 맞고, 때로는 매도 맞으며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육아에 있어서 융통성이며 바로 가정교육인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부모들의 융통성’을 이야기 할때마다 항상 나오는 질문이 있다. “아이들은 일관성 있게 키워야 한다고 하던데요...” 사실이다. 육아서나 부모교육과 관련된 글이나 서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일관성 있는 원칙으로 아이를 다뤄라!’는 말일 것이다. 필자 또한 부모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이 바로 ‘일관성 있는 원칙’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언제는 일관성 있게 키우라 해놓고 이제는 융통성 있게 키우라고 하니 뭔 소리가 뭔소린지 헷갈리게 된다. 일관성과 융통성은 공존할 수 없다는 논리다. 즉, 사전적 의미로 융통성이란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그때 그때 달라요’ 와 같이 일정한 규칙이나 원칙을 정해놓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지만 일관성이란 일정한 원칙을 정해놓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부모들이 융통성을 ‘비일관성’ 즉,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아이를 다루는 것으로 오해해 버린다. 하지만 필자가 주장하는 융통성이란 비일관성이나 무원칙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일관성을 유지하되 항상 열린 마음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다보면 항상 예외라는 것이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닥칠 수도 있고, 계획에 없었던 일들이 생겨날 수도 있으며, 갑작스럽게 계획이 바뀔 때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측불허의 상황은 육아라고 다를 게 없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지는 의외의 행동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달라지는 아이들의 기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라면 누구나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것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아이들의 의외성에 항상 같은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엄마들의 갈등과 고민이 시작된다. 즉, 원칙의 일관성과 상황의 융통성이 묘하게 공존할 때 어떤 기준을 우선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 엄마나 아이나 모두 나름대로 쇼핑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장난감 코너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엄마의 눈을 흘끗 한번 쳐다본다. 즉, 갖고 싶다는 신호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산 장난감과 거의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마음속으로 절대 사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순간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들기 시작한다.
“엄마! 으응~”
“안돼! 엊그제 산 것과 똑 같잖아”
“아니야! 틀린거야. 우리 친구들은 이것 다 갖고 있다구!”
“안된다면 안돼!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망가지면 다음에 사줄게”
“싫어! 사줘~”
   점점 울음소리로 변하더니 급기야 바닥에 주저앉는다. 모른 척 무시하고 아이에게서 멀어지자 급기야 아이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발뒤꿈치가 다 닿도록 발을 비비며 더 심하게 울부짖는다. 주위 사람들의 눈치도 심상치가 않다. “아이를 어떻게 키웠길래!” “왠만하면 하나 사주지!” 하며 모두들 나를 비웃는 것 같아 도저히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장난감을 사주자니 일관성을 깨뜨리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없다. 더 큰 문제는 도저히 내 자신이 쪽팔려서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순간, 모든 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아이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이고 또한 부모들이 가장 난감해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럴 때, 융통성을 발휘해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줘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번 안 된다고 했으니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야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된다면 어떻게 이 난관을 헤치고 나가야 할까?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텔레비전에서 도미노 게임을 본 진수가 도미노를 꺼내 자기도 쌓기 시작한다. 그런데 9시가 되었다.
“진수야! 이제 잘 시간이야. 어서 도미노 치우고 자야지?”
“엄마! 이제 조금만 세우면 돼요. 이렇게 어렵게 세워 놓았는데...”
“그래도 잘 시간에는 자야 된다고 약속했잖아? 빨리 치우고 잘 준비해!”
“잠깐이면 돼요. 이것 보세요”
“그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떡하고?”
“그럼 그때는 포기할게요. 그리고 치울게요”

   만약 이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 지금까지 세웠던 원칙을 스스로 깨는 결과가 되고 그렇다고 저렇게 많이 세워 놓은 도미노를 그냥 치우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얼핏 보아하니 아무리 늦어도 30분 정도면 세울 것 같다. 그리고 쓰러지면 그만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가 끝까지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도미노 쌓기가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닌데 성공을 눈앞에 둔 아이에게 잠자리 시간을 지킨다는 원칙성만 고집하는 것도 엄마로서 너무 매몰찬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처럼 많은 상황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꽤 힘들다. 따라서 약간의 융통성이나 일을 원활하게 풀어 가는 순발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언제 어떤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되는지를 모르겠다. ‘기본적인 원칙은 지키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융통성을 발휘한다’는 말은 알겠는데 어떤 상황이 합리적인 이유가 되는지 그것을 판별하고 대응하기가 부모들에게 있어서는 여간 쉽지 않다. 따라서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상황판단인 것 같다.

   부모들이 육아 원칙을 세울 때 가장 기본으로 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에서 출발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일, 예를 들어 공중도덕을 지키고, 타인의 물건에 손대지 않고, 함부로 사람을 때리지 않고,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것 등과 같은 공공의 원칙이나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에서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면 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거나 스스로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다시 위의 예로 돌아가 보자.

   첫 번째 상황에서 많은 부모들은 창피한 마음에 그리고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게 보통이다. 또한 이러한 행동이 상황에 잘 대처한 융통성 있는 육아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공공의 원칙이나 기본적인 예의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따라서 아이에게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계속 아이가 그렇게 있는 것도 역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공공의 원칙에서 벗어난다. 맞는 말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가정에서 일어났다면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둬도 상관이 없겠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아이의 그러한 행동을 중지시키든 아니면 공공의 장소에서 아이를 옮겨야 한다. 예를 들어,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쓸 정도의 아이라면 얼마든지 부모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다. 즉,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아이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이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쓴다면 그러한 행동 자체가 나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에 대한 강한 메시지 또한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 우선 아이를 강하게 안아야 한다. 아이가 부모의 강한 힘을 느낄 정도로 안아야만 한다. 아이에게 주는 메시지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행동으로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번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말이 여기서 통한다. 그리고 일단 사람들이 없는 비상구나 혹은 화장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여기서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설명이나 훈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여기서도 불가능할 때는 그대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이는 그러한 행동으로 자기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며, 또한 앞으로 그러한 행동을 할 경우는 부모가 몹시 화가 난다는 사실과 즐거운 쇼핑이 도중에 중단된다는 사실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에는 일관성을 유지하되 융통성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부모가 넓은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데 바로 두 번째 예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매일 그런 것도 아니고 오늘따라 텔레비전에서 도미노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밤늦게 도미노 쌓기를 시작했다. 얼핏 보아하니 아무리 늦어도 30분 정도면 세울 것 같다. 그리고 쓰러지면 그만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가 끝까지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도미노 쌓기가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닌데 성공을 눈앞에 둔 아이에게 잠자리 시간을 지킨다는 원칙성만 고집할 수는 없다. 이처럼 타인에게 해를 주거나 아이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또한 하루가 멀다하고 빈번하게 요구하는 습관화된 행동이 아니라면 기분 좋은 융통성을 발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관성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라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 한 가지 길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다. 아이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엄마와 같이 만든 원칙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이다. 보다 열린 마음으로 아이의 주변까지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자세를 갖춘다면 보다 많은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만 3세 미만 아이에겐 일관성보다 융통성을 잘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 3세 이전의 아이는 아직 이성적인 행동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돌출적인 행동을 할 때이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육아 마인드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이의 상태를 먼저 파악한 다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의 원칙이나 기본적인 예의는 항상 가르치고 보여 주되, 아이가 그대로 따라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도록 조바심 내지 않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육아에 있어 일관성과 융통성의 의미란 상반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것이 일관성이 아니듯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을 융통성이라 하지도 않는다. 이것을 두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죠?” 또 “이런 상황이 닥쳤는데 어른 고집대로 해서 아이 성질만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요?” 하는 일관성이냐 융통성이냐 하는 고민보다 내가 세운 육아 원칙에서 벗어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따져서 일을 풀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약이 되는 부모는 시시적절하게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부모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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