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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그랜딘은 진짜 자폐증 환자일까?


  "우리들은 상대편 진을 빼앗기 위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골키퍼를 혼란시켜 진을 빼앗기 위해 나는 내 코트에 마른 나뭇잎들을 가득 담아서 골키퍼가 볼 수 있는 장소까지 다가가 코트를 놓아 두었다. 골키퍼가 그 코트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 나는 골로 뛰어들어가 진을 빼았았다."(Temple Grandin, Margaret M. Scariano. "Emergence:Labeled Autistic", Arena Press.,1986, p:51~52)

"우리는 4학년 선생님의 집에 있는 굴뚝이나 포치(서양식 건물에서 지붕이 있는 현관 앞의 차대는 곳), 그리고 장미꽃을 향해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우리가 던진 돌맹이들이 선생님의 정원에 가득히 쌓였다. 다음날 수업중에 맥도날드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선생님의 정원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나는 의심을 받지 않기위해 일부러 선생님 옆자리에 앉아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맥도날드 선생님! 선생님의 아름다운 정원이 더러워져서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네요?" 하고 말을 걸었다. (중략)"하지만 저는 어제 슈-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로버트 루이스와 버트, 존킨스가 선생님의 집 근처에 있는 것을 어제 보았습니다" 하고 일러바쳤다. 맥도날드 선생님이 일어나더니 로버트와 버트가 있는 자리로 갔다. 나는 선생님이 그 둘을 교장실로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두 친구가 가엽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돌을 던질려고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니까. 게다가 나를 그렇게 괴롭히는 아이들은 저렇게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면 그 아이들에게 몹쓸짓을 했다고 생각한다."(위의 책, p52~53)

서계에서 최초로 자폐증 환자 본인에 의해 쓰여진 자서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번역서가 출간되어 잘 알려진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저자인 템플 그랜딘은 전형적인 자폐증인 저기능 자폐증이 아니라 일명 고기능 자폐증으로 알려진 아스퍼거 증후군에 가깝습니다. 1947년생으로 동물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현재는 콜로라도주립대학의 조교수로 재직하며 축산관계의 설비나 기구의 설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로서도 수완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중에서는 현재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이 책이 출판될 당시 가장 논쟁이 되었던 부분이 위에 열거한 부분들입니다. 즉,  '자폐증 아이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논쟁입니다. 아니 이보다도 '자폐증 환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책을 쓸 수 있느냐?' 라든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자폐증 환자라는게 말이 되느냐?' 하는 논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사실 '자폐증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남을 속이거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도 대다수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 및 의사소통과 관련된 이론을 잘 표현한 것이 '마음이론'입니다. 따라서 템플 그랜딘의 어렸을적 행동을 '마음이론'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음이론(Theory of Mind)'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음이론이란 사람(혹은 유인원)이 다른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을 유추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과는 다른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마음이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프리맥과 우드러프(D. Premack and G. Woodruff)가 "Does the chimpanzee have a theory of mind?" 라는 제목으로 197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연구에서 침팬지 Sarah에게 곤경에 처한 사람의 활동사진을 보여준 후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고르도록 하였는데, Sarah도 이에 적절한 사진을 택함으로써 영화 속 사람의 의도나 생각을 읽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Premack은 침팬지도 행동을 마음상태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이렇게 행동과 마음상태간의 관계에 대한 지식을 ‘마음이론’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이론을 대입하여 자폐장애를 연구한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의 Simon Baron-Cohen입니다. 그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하여 이해하는 능력으로서 만4세 이후에 획득되는 인지 기능인데, 자폐아동은 마음이론이 발달되지 못했거나 손상되어 있다. 즉, 자폐 아동은 자신이나 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인지결함을 가지며,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 및 의사소통 면에서 비정상성이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마음이론의 기능을 조사하는 검사로서 '샐리-안나 테스트(Sally-Anna test)'라는 것이 있습니다.

'샐리가 볼을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 샐리가 보는 앞에서 안나가 상자 속의 볼을 꺼내 바구니 속으로 옮겼다. 잠시 후에 샐리가 돌아왔다'

위와 같은 내용의 인형극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 후에 '샐리는 공을 찾기 위해서 어디를 찾아볼까?' 하고 질문합니다.

'바구니 속'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마음이론의 기능에 장애가 추정되는 자폐증 아이들은 '상자 속'이라고 답한 비율이 높았습니다. 결과를 보면 4세의 정상아의 경우 27명중 23명이 정확하게 답하였습니다. 다운 증후군의 경우(생활연령: 10년 11개월, 언어정신연령 2년 11개월)는 14명중 12명이 정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폐 아동의 경우 (생활연령: 11년 11개월, 언어정신연령: 5년 5개월)는 이들의 정신연령이 다운 증후군의 아동의 정신 연령보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20명중 4명만이 정답을 하였습니다. 실제로 저의 임상경험에서도 자폐증 아이와 마주 앉아 아이가 보는 앞에서 오른쪽 손에 구슬을 쥐고 있다가 왼쪽 손으로 옮긴 후, 어느쪽 손에 구슬이 있는지 물으면 '오른쪽 손'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계속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이는 아이가 본 첫 번째 사실 하나만을 인식하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의 신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자신과는 다른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템플이 취한 행동을 마음이론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골키퍼를 혼란시켜 진을 빼앗기 위해 나는 내 코트에 마른 낙엽을 가득 담아서 골키퍼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두었다...'

이는 건강한 3세~4세아의 레벨입니다. '어떤 물건이 상자 속에 숨겨져 있다면 상자 속을 본 사람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만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라는 사실, 즉 '타인의 무지'를 이해하는 능력인데 만 3세에 통과하는 능력입니다. 또한 다른 위치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은 자신이 앉아있는 장소에서는 보이지 않는 물건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이 또한 3세아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같은 물건을 보아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사람에 따라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나이는 4세경입니다.

'우리는 로버트 루이스와 버트, 존킨스가 선생님의 집 근처에 있는 것을 어제 보았습니다" 하고 일러바쳤다. 맥도날드 선생님이 일어나더니 로버트와 버트가 있는 자리로 갔다. 나는 선생님이 그 둘을 교장실로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두 친구가 가엽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돌을 던질려고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는 유아적인 거짓말입니다. 1차적인 지향적 시스템은 타인이 믿는 것에 관해서는 생각치 않고 단지 타인이 행할 것이다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타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도록 행동합니다(3세에서 통과). 2차적인 지향적 시스템은 사람의 신념을 조작하는 것에 의해 사람을 조작하는 것으로 사기나 거짓말, 비밀 등이 됩니다(4세에 통과).

'나를 그렇게 괴롭히는 아이들은 저렇게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으니까.... '

이는 속임수입니다. 아이들은 4세경에 자신이나 타인의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의로 거짓말을 해서 타인을 속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이해하게 됨으로서 사물을 타인의 시점에서 생각하거나 공감하거나 어떻게 하면 타인을 도와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따라서 템플이 한 행동을 마음이론에 대입해 보면 모두 통과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이 다음 장에 '이러한 이해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로서 자폐증아에 대해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템플은 자폐증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자폐증아라고 하는 것은 '어렸을적 보통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로서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위의 템플의 에피소드는 초등학교 5학년생의 이야기로 이것은 자폐증아가 '마음이론'을 획득하는 표준적인 시기와 일치합니다. 즉, 5세때 '2차적인 지향적 시스템'으로 이행하는 보통의 아이들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유치한 행동인 것입니다.

사실 자폐증 환자가 결코 획득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신념이나 욕구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심적존재입니다. 아기들은 얼굴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태어난 직후부터 사람과의 파장을 맞추려고 합니다. 따라서 낮선 사람을 만나거나 장난감을 대할때도 엄마의 얼굴을 확인합니다. 만약 엄마가 적의를 갖는 인상이나 행동을 보이면 아이는 물러서고 엄마가 우호적인 행동을 취하면 아이도 다가갑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엄마의 정동적인 반응에 주목하게 됩니다. 즉, 적어도 엄마의 표정에 따라 외계의 사물에 다르게 반응하는 '사회적 참조'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후 9개월 전까지는 주로 장난감과 같은 물건을 가지고 놀거나 사람과 상호작용을 합니다. 하지만 9개월 후부터는 사람과의 상호작용과 물건과의 상호작용을 협응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러한 능력은 외부세계의 것에 대하여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이 능력은 사회적참조로서 나타나지만 다른 행동으로서도 나타납니다. 엄마가 무엇을 보면 아이는 엄마의 시선을 쫒아 엄마와 아이는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엄마가 보기를 희망하는 것을 손으로 가리킬 수가 있습니다(공동주시). 이러한 것을 잘 나타내주는 증거가 9개월 이후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주고받는 놀이'입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실제로는 심적상태의 상호작용이지만 우리들은 그 상태를 타인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언가를 원할 때나 무언가를 믿도록 할 때 타인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타인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서로 나눠야만 합니다. 전달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본이지만 이러한 전달을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언어'를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단어의 의미를 획득하거나 문법적으로 정확히 사용하는 능력보다도 오히려 언어를 사용해 타인에게 전달하거나 상호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나오는 문제는 '의미론'이나 '통어론'의 획득이 아니라 '어용론' 즉,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의 문제입니다.

언어는 사회적인 문맥에서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달 시스템으로서 언어의 사용이나 언어사용자의 의도나 그 의도가 코드화되어 해석되는 방법 등도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어용론의 발달이 의미론이나 통어론의 발달보다 빨리 나타납니다. 즉, 아기들은 말하기 전에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아기들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말하기 전에 몸짓을 사용합니다. 아기들의 이러한 몸짓은 처음에는 전달의 의미가 없지만 옆에서 보는 부모들은 이러한 아기들의 자연적인 몸짓을 의도적인 전달로서 해석합니다. 이러한 문맥속에서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전달하게 되고 비자연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언어라고 하는 시스템의 규칙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렇듯 아기들이 가능한 이러한 것들 모두가 자폐증 아이들이라고 해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자폐증 아이들은 매우 늦게, 혹은 매우 유치하게 이러한 과제들을 달성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고 또한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을 이용해 어떻게 행동을 취하도록 할까, 그리고 어떻게 말하면 될까, 와 같은 주관적인 이해가 가능할지라도 결고 불가능한 것은 '사회적 상호작용'입니다.

언어장애가 없는 자폐증일지라도 어떤 화제에 대해 서로 교대로 이야기를 한다든지 상대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상대에게 설명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신념을 바꾸도록 설득한다든지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역시 언어를 사용해서 타인에게 전달하거나 서로 공유하는 능력, 즉 '어용론'의 장애는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자폐증 환자에 대해 '의사소통이 어렵다'거나 '마음을 전달할 수가 없다' 든지 '마음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입니다. 단지 매우 적응도가 좋은 자폐증 환자는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도 지장없이 잘 수행해 가고 있습니다. 의사전달이 가능하고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도 알고 사람과의 접촉도 원활히 가능합니다. '마음이론' 과제는 훌륭히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아무런 문제없이 적응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도 나타낼 수 있지만 행동으로도 나타납니다. 템플은 사람이 취하는 행동을 예측했고 언어로서 신념을 조작해서 사람을 속일 수도 있었습니다. 템플은 '행동장애'가 있는 '자폐증'이었지만 '주의력 장애'나 '학습장애'는 가벼웠습니다. '언어발달의 지연'과 '읽기장애'가 있었던 것은 주로 청각계의 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폐증 환자에게 '마음'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단지 자폐증 환자에게 마음이론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은 타인의 말을 인지하는 과정과 추론하는 과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마음'이라고 말해도 다양한 레벨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라고 말할 때는 타인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저 사람은 마음이 차갑다'라고 할 때는 정이 없다는 의미이고 게다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마음'도 있습니다. 즉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공통의 견해나 감정, 사고 등을 '한국인의 마음'이라 부르며 부모로서의 공통적인 생각을 '부모 마음'이라고도 말합니다. 따라서 자폐증 환자들도 마음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폐증만이 가지고 있는 '자폐증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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